2021年4月4日 星期日

埋沒的石頭



「人的內心變化無常。雖然聽了話語並相信,但時間過去,內心精神就改變,然後就轉身背對,變得不再相信。如此,人會變得怎麼樣,沒有人可以打包票。就算總是說自己信仰很好,但不知不覺中,內心就改變了。」


主日禮拜的時候,話語這麼說了。


「為何會改變?因為忘記了 神過去的動工,而將心情轉向別處。在生活中,因為無法一直接觸到 神所動的工,就受到現實其他事物的影響,結果就忘記 神之前的動工。為了不要淪於如此,總要不斷地思考 神過去的動工。」


確實,明白 神所動的工,是信仰的基礎工程之一。因此,有所明白的,該做的是不要忘記;還未明白的,該求的是明確了解,否則根基不穩,一點風吹雨打就面臨倒塌。


去年九月份,攝理人尊稱為老師的鄭明析牧師在一次主日證道中,提到了月明洞的野心作石頭造景。美麗、神秘又雄壯的野心作,其實除了人們看得到的部份,還有許多埋沒在地下無法讓人欣賞到的部份。因為無法讓人欣賞到,總覺得可惜,然而就是這些無名英雄,成了野心作穩固的根基。


透過這個故事,也都再次思考 神在自己身上所動的工以及刻劃下的故事吧。


야심작 첫번째 묻힌 돌
野心作中埋沒著的第一個石頭


월명동 자연 성전, 
야심작 앞에는 허리까지 오는 돌이 있는데 너무 아까워서
제일 처음에는 첫돌이 많이 보이라고 많이 올려 쌓았습니다.
在月明洞自然聖殿,野心作前面有到腰部高的石頭。
因為覺得很可惜,一開始的時候,
為了讓石頭可以多被看到一些而堆得很高。


나중에 넘어지고, 그 밑에는 더 묻히고 그다음에 더 묻혔습니다.
之後卻倒下了,所以把底下石頭埋更多進去,
再之後又埋了更多進去。


지금은 맨 밑돌은 묻어 버렸습니다.
到現在,最底下的石頭是整個埋著的。


그래서 한 뼘도 안 되고 앉을 장소도 없습니다.
所以連一掌的高度也沒有露出來,連能坐下的地方都沒有。


그전에는 다 앉을 장소가 있었는데 
긴 돌이 허리까지 묻혀서 아까웠습니다.
之前都有可坐的地方,
而且因為長石頭要埋到只剩腰部高,覺得很可惜。


그래도 그 턱을 따라서 돌 조경을 쌓아 올라갔습니다.
不過還是按照這個方式改變石頭造景來堆了。


이와 같이 어떤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아쉬워합니다.
就像這樣,有的東西是無法讓人看到而覺得很可惜的。


그러나 ‘자기 행한 것.’ 묻어 놓아도 괜찮습니다.
可是「自己做的事情」,埋沒了也不要緊。


위의 것 보고 빛나면, 밑에도 빛납니다.
上面的東西看來發光的話,下面也會跟著發光。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這樣反而成了一個故事。


사람들이 자기 행한 것을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人們即使自己做的事情沒有被了解到,
也並不需要覺得悵然。


그것은 첫 번째 묻힌 돌이나 똑같습니다.
這就跟被埋起來的第一個的石頭一樣。


열심히 했는데도 묻혀서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雖說努力做了,但有很多東西是埋著而看不到的。


‘아, 이것을 보여줄 수 없을까?’
「唉,不能把這個給人看嗎?」


하지만, 그렇다고 포크레인으로 파낼 수도 없습니다.
雖是如此,也不能叫挖土機來把它挖出來。


그때는 이야기하면 믿어 줍니다
這時候,要相信這個故事。


‘이 위가 튼튼한 것은 밑의 돌을 
주초로 아주 완벽히 박아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윗덩이 같은 돌을 밑에다 
박아 버린 정도이다.’
라고 말해 주면 됩니다.
「這上面這麼堅固,
就是因為底下的石頭完美地立下了基礎。
這是把非常大的巨石一樣的石頭埋在底下的程度。」
這樣子跟他們說了。


밑에 묻혀 버린 것이 아깝지만
이처럼 묻힌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묻혀 있는 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도 빛이 나는 것입니다.
在底下被埋起來的東西是很可惜,
就像把東西埋著無法讓人知道,
然而就像埋起來的石頭一樣,
這樣子其他的會發光。


이와 같이 아주 공력 있게 행해야 합니다.
如此,要很有功力地去做才可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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